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베를린 공방전 (문단 편집) === 스탈린그라드에서 베를린까지 === [[파일:Berlin55.jpg]] 제국의사당 앞의 제150소총병사단 병력.[* 해당 사진에 바로 앞에 있는 사람 오른쪽에 있는 사람은 스탈린그라드부터 살아남아 왔다는 추측이 있다. 스탈린그라드 전투 관련 사진에 저 아저씨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 있다고 한다.--[[디미트리 페트렌코|디미트리?]]--] 베를린 공략을 직접 맡은 부대는 [[스탈린그라드 전투]]에서 용맹을 떨친 소련군 제62군이 개편된 제8근위군(1943.4.16 부로 개편)이었다. 스탈린그라드의 맹장 [[바실리 추이코프]] 중장(후에 소련 원수로 최종 진급)은 그 이후에도 이 부대를 맡아 2년간 계속 지휘했고, 이 부대는 결국 베를린 공략 부대라는 소련군에서 가장 명예로운 역할을 맡았다. 이 부대는 스탈린그라드에서 익힌 시가전 전술에 매우 능했으며, 그때 익힌 노하우를 적극 이용했다. [[수류탄]], [[박격포]], [[기관총]], [[화염방사기]]를 갖춘 10여 명의 [[분대]]가 [[분대장]]의 독자적이고 자율적인 판단하에 독일군이 점령하고 있는 건물에 돌입하여 적을 소탕하는 작전이었다. 이 부대는 종전 직후 그대로 베를린에 눌러 앉았고, [[동서독 통일|통일]]과 소련 붕괴 후에도 [[러시아군]]으로서 남아 있다가 군사 협정 후 철수할 때까지 계속 주둔했다. 한편 베를린의 제국의사당을 직접 점령한 제150소총병사단은 오로지 제국의사당에 소련 국기를 게양할 것을 직접 명령받은 9개의 사단 중 하나로 그 위업이 특별시되어 쿠투조프 훈장 2급 훈장을 수여받았으며, 지금도 [[승리의 날]] 퍼레이드 때 가장 처음으로 행진하는 의장대는 러시아 국기와 함께 이 부대의 깃발을 들고 행진한다.[* 정식 부대명칭은 '''붉은 군대 제1벨라루스 전선군 제3충격군 제79군단 제150 '이드리차' 소총병사단'''이다.] 그야말로 소련군 전설의 부대[* <월드 앳 워>의 소련군 미션 주인공인 디미트리로 플레이할 때도 미션 시작시 이 부대 소속으로 표시된다.]로 제150소총병사단은 전쟁 종결 직후인 1946년 해체되었으나 70년 후인 2016년 [[러시아군]]이 부활시켰다. 부활한 제150소총병사단의 정식 명칭은 '제150 이드리차-베를린 쿠투조프 훈장 2등급 기동소총병사단(150-я Идрицко-Берлинская ордена Кутузова 2-й степени мотострелковая дивизия)'.[* 재창설 후 첫 실전 기록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며, [[마리우폴 포위전|마리우폴 공격]]에 투입되었다고 한다. 2023년 중반 기준으로 [[마린카 전투|마린카에서 소모전 중]]인 상태이다.] [[파일:Berlin56.jpg]] 서베를린에 세워졌던 소련군 전사자 추모 동상.[* 하술하겠지만 원래는 소련군 점령지역이었을 때 공사를 했지만 베를린을 분할하던 과정에서 영국군 구역으로 넘어가게 되었다.] 사진에는 드러나 있지 않지만 [[T-34-76]] 1대와 [[152mm ML-20 곡사포]] 1문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.[[http://www.alamy.com/stock-photo-soviet-war-memorial-of-world-war-2-berlin-germany-deutschland-europe-65504021.html|#]] 통일 당시 [[헬무트 콜]] 수상은 소련에게 이 동상을 절대로 철거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지금도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 있다.[* 콜은 아내가 12살 때 소련군에게 강간당했지만 독일 총리였기 때문에 공사 구분이 뚜렷했다. 따지고 보면 콜의 아내가 강간당하는 근본적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은 아돌프 히틀러였다.] 러시아와의 관계가 나빠진 이후로는 이 동상의 의의를 소련을 배려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나치 범죄에 대한 반성으로 받아들이는 측면이 강하다. 오스트리아의 빈에도 비슷한 동상이 있다. 이 동상은 처음 부지를 선정하고 공사 시작할 때에는 문제가 없었으나 나중에 베를린을 분할하고 보니 부지가 영국군 구역으로 설정되어버린 것이다.[* [[브란덴부르크 문]]에서 서베를린 쪽으로 약간 더 들어가야 한다.] 이후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 소련/동독의 양외지처럼 간주되어 서베를린이었음에도 소련군 의장대원들이 경비를 섰다. 그리고 동독 학생들의 견학도 잦았다고 한다. 독일이 통일되고 러시아군이 철수한 후로는 사라진 풍경이고 러시아의 양외지도 아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